원로목사 이경준목사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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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 오묘한 섭리

다운교회 0 345
(오늘은 “병, 고난 통해 꿈을 이루어주셨네.”라는 제목으로 이중표 목사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꿈과 소원이 있었다. 그것은 성자처럼 살다가 성자처럼 죽는 것이었다. 성스럽게 살아간 삶의 흔적을 남기고 고결하게 죽은 역사적 인물로 남고 싶었다. 이것은 어린 시절의 꿈이요, 필생의 소원이 되었다.

(중략)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하다. 내 꿈은 목사가 되면서 깨지기 시작했고 목사가 되면 성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목사는 혼자 사는 자가 아니라 많은 성도와 더불어 사는 공동체요, 저들을 돌보고 다스리는 목자이기 때문에 성자가 될 수 없다. 또 교회는 양과 염소가 공존하는 현장으로 수도원이 아니다. 목사는 일생을 교회를 운영하고 살려내는 경영자다. 성자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 침묵의 사람이어야 하는데, 입을 열고 설교하면서 말 잘하는 자가 되고 만다.

(중략) 그런데 그 꿈을 이루어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병들게 함으로써 그 뜻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이다. 두 달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일관되게 깨우쳐주신 것은 ‘너는 환자’라는 사실이었다. 모든 검사가 환자임을 확인하는 것이었고, 모든 치료가 환자로서 고침 받는 시간이었다. 눈을 뜨고 보는 사람마다 환자들이고 환자들로 병원은 붐비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축소판이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성한 사람은 없다. 모두 병든 자요, 상처 난 자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다. 이런 환자들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싸우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분을 내니 얼마나 부끄러운가. 나는 병원 벤치에 앉아 부끄러운 인간의 삶을 생각하며 혼자 울고 있었다. 옆의 환자가 내게 물었다. “많이 아프신가 봐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도 환자, 너도 환자인 불쌍한 존재들. 서로 미워하며 살 필요가 어디 있을까?

(중략) 내가 병들기 전에 알 수 없었던 것이 안목의 정욕이었다. 나도 역시 소유욕, 명예욕, 음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병들고서야 안목의 정욕에서 해방되었다. 병든 자에게 소유와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는 병들고서야 성자가 된 것 같아 감사를 드렸다. 병들어 있는 순간 나는 자기를 비운 한 인간을 보았다. 그 순수와 선함을 보았다. 세상을 바라보던 눈을 돌려 하늘을 보게 되었다. 병상에서 보는 하나님은 예전과 전혀 다른 하나님이셨다. 나는 병상에 주워서야 받은 은혜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병들고서야 깨닫는 은혜가 따로 있다.
내가 병들고서야 배우는 진리가 따로 있다.
내가 병들고서야 흘리는 눈물이 따로 있다.
내가 병들고서야 드리는 기도가 따로 있다.
내가 병들고서야 성숙할 인격이 따로 있다.
내가 병들고서야 만나는 주님이 따로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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