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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서 믿는가, 믿어서 거듭나는가?

이경준목사 0 341
존 파이퍼의 “거듭남”(두란노)이라는 책의 서평을 써야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 서평의 요점을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한자로 중생(重生)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유대인 종교지도자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못 본다는 말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거듭났는가?”입니다.

예수님을 제 마음에 영접하지 않은 채, 친구를 따라 참석했던 수양회에서 제가 들었던 질문입니다. “경준이는 구원받았나?” 그때까지 두 달을 교회에 다니며 성탄절 장식 준비에 바빴고, 친구를 따라 성가대석에 앉아있던 저였기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다른 친구들에게 뒤떨어지기 싫어서 하루에 세 구절씩 암송을 하던 성경구절 중에 요한복음 1:12은 저를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저는 그때까지 주님을 영접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해 제 마음에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인도하셨고, 그리하여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며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새 본성을 빚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거듭나야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거듭나기 위해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믿음으로 거듭난다.’고 하면, 마치 우리의 믿음이라는 행위 때문에 구원받는다는 말처럼 들려서 거부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거듭나야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들립니다. 심지어 ‘아무리 전도를 해도 거듭나게 하지 않으시면 허사인가?’라는 의문까지 가질 수 있습니다.

로마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들을 것이요, 들어야 믿을 것이요, 믿어야 부를 것이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전파하는 자를 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거듭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믿음(고전 12:3)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 19은,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즉 거듭날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과 믿음 사이에는 시간적 간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거듭나는 그 순간 믿습니다. 우리는 믿는 그 순간, 자신이 거듭났음을 압니다. 불이 있으면 열이 있듯이, 새 생명을 얻는 순간 믿음도 생겨납니다. 구원받는 믿음이 가능한 단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을 거듭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거듭나는 사건에서 하나님의 역할은 결정적이며, 한 사람이 거듭나는 사건에서 우리의 역할은 필수적입니다.

겸손이나 종의 마음이 없이 오만한 태도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행위는 복음과 모순됩니다. 복음을 전혀 전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마음과 섬김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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